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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몸이 내 근육을 공격한다고요?
중증근무력증(Myasthenia Gravis)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입니다.
즉, 외부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입하지 않았는데도, 내 몸의 방어시스템이 잘못된 대상을 공격해 생기는 병이에요.
정상적인 경우, 신경이 근육에게 “움직여라!”라고 명령을 내리면 근육은 이를 받아 움직입니다.
이때 **‘아세틸콜린(acetylcholine)’**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신호를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하죠.
하지만 중증근무력증 환자에게는 이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.
그 이유는 면역체계가 근육의 ‘수용체’를 공격해 파괴하기 때문이에요.
이처럼 내 몸이 내 근육과 신경 사이의 통신선을 스스로 끊어버리면서,
결과적으로 눈꺼풀이 내려앉고, 팔에 힘이 빠지고, 말하거나 삼키기 어려워지는 증상이 나타납니다.
1. 자가면역 반응 — 잘못된 면역의 공격
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원래 ‘적’을 구별하는 똑똑한 군인입니다.
하지만 중증근무력증에서는 이 면역군인들이 실수를 합니다.
‘세균’ 대신 ‘나의 신경수용체’를 적으로 착각해 공격하기 시작하죠.
이때 주요 표적이 되는 것은 ‘아세틸콜린 수용체(AChR)’라는 단백질입니다.
이 수용체는 신경에서 근육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한 구조물인데,
면역체계가 이 수용체를 파괴하면 신호가 제대로 가지 못해 근육이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.
즉, 신경은 명령을 내리지만 근육은 그 말을 “못 듣는”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.
또 다른 일부 환자에서는 MuSK (Muscle-Specific Kinase)라는 단백질을 공격하는 항체가 발견됩니다.
이 경우에는 전형적인 눈꺼풀 처짐보다 목과 몸통 근육 약화가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.
이처럼 어떤 항체가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증상의 양상과 치료 반응도 달라집니다.
2. 흉선의 이상 — 병의 중심 역할을 하는 기관
중증근무력증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바로 ‘흉선(Thymus)’입니다.
흉선은 가슴뼈 뒤쪽, 심장 위에 위치한 작은 면역기관으로,
어릴 때 면역세포인 ‘T세포’를 교육시키는 역할을 합니다.
정상적인 흉선은 나이가 들면 점차 작아지지만,
중증근무력증 환자에게는 흉선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거나, 흉선종(Thymoma)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.
이 비정상적인 흉선에서는 ‘잘못된 면역세포’가 만들어집니다.
즉, 내 몸을 공격하면 안 되는 T세포가 계속 활성화되어,
아세틸콜린 수용체를 공격하는 항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죠.
실제로 환자의 약 70~80%에서 흉선의 이상이 발견되며,
이 때문에 흉선 절제술(Thymectomy)이 치료의 한 방법으로 사용됩니다.
특히 젊은 환자나 흉선이 비대한 경우, 수술 후 증상이 호전되는 사례가 많습니다.
3.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— 복합적인 원인
중증근무력증은 단순히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.
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질환입니다.
✅ 유전적 요인
중증근무력증 자체가 ‘유전병’은 아니지만,
면역체계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체질은 가족 간에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.
예를 들어, 가족 중 루푸스나 갑상선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경우
중증근무력증 발병 위험이 조금 더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.
✅ 환경적 요인
면역 균형을 흔드는 외부 자극들도 영향을 미칩니다.
- 심한 스트레스
- 바이러스 감염
- 호르몬 변화(특히 여성의 경우)
- 특정 약물(항생제, 마그네슘, 베타차단제 등)
이런 요인들이 면역체계의 균형을 깨뜨려 자가면역 반응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.
4. 왜 눈부터 증상이 시작될까?
중증근무력증의 초기 증상은 대부분 눈꺼풀 처짐이나 복시(겹보임)입니다.
그 이유는 눈 주위 근육이 다른 근육보다 작고, 피로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입니다.
눈 근육은 하루 종일 움직이기 때문에 신경전달의 작은 문제도 바로 드러납니다.
또한 눈 근육의 신경접합부는 다른 부위보다 예비 수용체가 적어서,
면역 공격을 받으면 더 쉽게 기능이 떨어지죠.
이후 시간이 지나면 얼굴, 팔, 다리, 심지어 호흡근으로까지 증상이 확산될 수 있습니다.
5. 면역이 건강해야 근육도 건강하다
결국 중증근무력증의 근본 원인은 면역체계의 혼란입니다.
그래서 치료 역시 단순히 근육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,
면역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.
이 병은 ‘나쁜 면역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,
과잉 반응하는 면역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.
그렇기 때문에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
- 충분한 수면과 휴식,
- 스트레스 관리,
- 균형 잡힌 식습관입니다.
면역은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.
하루하루 꾸준히 관리하며, 자신의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잘 살피는 것이
곧 치료의 시작이자 예방법입니다.
“내 몸을 적으로 착각한 면역, 다시 친구로 만들기”
중증근무력증은 단순히 근육의 문제가 아니라,
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‘나 자신을 오해한 결과’로 생긴 질환입니다.
하지만 희망적인 점은 있습니다.
이 병은 면역을 조절하고 꾸준히 관리하면 충분히 조절 가능한 질환이라는 사실입니다.
내 몸의 방어체계를 다시 ‘내 편’으로 되돌리는 과정,
그것이 바로 중증근무력증 치료의 본질입니다.
